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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적

[소설] - 다이브

by 수인분당선 2025. 8. 24.

 

지음: 단요

출판: 창비

 


어린 시절에는 항상 책에 대한 사전조사도 없이 시간이 날 때마다 도서관에 들어가 새로운 책은 없는지, 내가 찾지 못했던 재미있는 책은 없는지 30분이고 1시간이고 서가를 둘러보며 책을 찾아다녔었는데, 요즈음에는 항상 미리 이름있고 유명한 고전서적이나 현대소설들을 찾아두고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거나 서점에서 책을 사읽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아무래도 살아가다보니 시간이라는 게 점점 더 소중해지고, 그만큼 실패없이 좋은 책을 골라 읽고 싶었던 마음도 있었던 것 같고, 새로 이사를 한 후의 가장 가까운 도서관의 서적들이 대체로 잘 관리가 되어있지 않아서도 있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 저희 집 근처 도서관은 전반적으로 오래된 책들로 서가가 구성되어 있고 바래거나 헤진 책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그런 책들 속에서 재미있는 책을 찾았을 때야말로 정말 행복한 순간 중에 하나였음이 생각이 났고, 그래서 오랜만에 한참동안 서가를 둘러보며 책을 찾다가 만나게 된 책이 바로 이 "다이브"라는 책입니다.


구성

바로 전에 읽은 책 또한 창비였습니다.

항상 입이 닳도록 말하지만 창비 출판의 서적 특징은 전반적으로 책이 가볍고, 정석적인 구성을 보여준다는 점입니다.

170 가량의 짧은 분량으로 되어있고, 10개정도의 챕터로 구성되어있습니다. 챕터 속에서도 매번 *표시로 구간을 끊어주므로 책을 읽는 도중 끊김이 생기더라도 다시 빠르게 몰입이 가능합니다.

 

줄거리

2057년의 지구는 물에 잠겼습니다. 수많은 건물, 차, 심지어 사람들까지 모두 물에 잠기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물에 잠기지 않은 높은 산이나 고층 건물에서 살아갑니다.

그 중, 책은 노고산에 살고있는 아이 선율의 이야기로부터 시작됩니다.

선율은 물꾼으로써 바닷속에 잠긴 식량, 주요 생존물품들을 찾아 나르는 아이입니다. 어느 날 선율은 남산의 우찬과 시비가 붙어 서로 좋은 물건을 건져오는 사람이 이기는 내기를 하게 되었고, 선율은 좋은 물건을 찾기 위해 물속으로 내려갔다가 상자에 갇힌 로봇을 발견합니다. 

수많은 기계과 로봇들이 물에 잠겨 고장났지만, 상자에 갇혀있어서인지 온전해보였던 로봇을 꺼내 온 선율은 배터리를 연결하고 로봇을 깨웁니다. 

로봇은 실제로 살아있던 한 사람인 "채수호"를 모방하여 만든 로봇이었습니다. 수호는 선율에게 현재 상황을 듣고 의아함이 생겼습니다.

"궁금한 거라니?"
"지금은 2057년이고, 내 마지막 기억은 2038년이지. 그 사이에는 십구 년이 있고. 그런데 서울이 이렇게 된 게 십오 년 전이라고 했잖아. 사 년이 텅 비네. 왜일까? 나는 사 년 동안 거기에서 뭘 하고 있었던 걸까?"
물가로 올라온 수호는 선율의 앞에 섰다. 해를 등진 수호의 몸은 횃불의 심지처럼 보였고 노을은 거대한 불꽃 같았다. 어둠에 파묻힌 얼굴 속에서 두 눈이, 플라스틱과 유리알로 이루어진 눈이 맹렬하게 빛났다.
"여기에 앉아서 계속, 계속, 계속 생각해 봤지. 부모님은 왜 나를 거기에 내버려뒀을까? 진짜 채수호는 기적적으로 나았으니까, 복제품이 더는 필요하지 않아서? 사 년이 지나고서야 채수호가 죽어서 다시 만들려는데, 2038년 이후로는 기억을 저장해 두지 않아서? 아니면, 막상 만들어 놓고 보니 복제품으로는 딸의 빈자리를 대신할 수 없어서?"
목소리가 파도치듯 다가왔다. 선율은 심장이 갑갑해지는 것을 느끼며 침을 꿀꺽 삼겼다. 그 사 년 사이의 일은 물에 잠겨서 분간할 수조차 없게 되어 버렸다는 것을 아는데도, 심지어 그건 자신 앞에 있는 수호의 기억조차 아닐 텐데도 그랬다. 
"내기에 나갈게. 그러니까 너도, 내 사 년을 찾아 줘."
이윽고 선율은 자신이 플라스틱 큐브에서 꺼내 온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깨달았다. 그건 내기 물품이 아니라, 멀쩡하게 움직이는 기계 인간이 아니라, 아직 오지 않은 과거였다.

 

기억을 찾는 보름이라는 기간동안 노고산의 아이들이나 노고산의 삼촌 경이 등 각자의 인물이 가진 상처와 기억들이 드러나고 서서히 성장해가는 모습이 드러납니다. 결론적으로 수호는 물속에 잠겨있던 또다른 자신의 로봇을 발견했고, 그 로봇과 자신을 연결하여 기억을 되찾았습니다. 


고통을 견디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 시작을 찾아 헤메곤 한다. 나무의 밑동을 자르면 가지도 말라 죽듯이. 그것 하나만 쳐내면 다른 아픔은 한순간에 사라질 거라는 믿음 때문이다. 

처음 책을 읽었을 때에는 SF주제로써 미래 시대에 살아가는 생존과 관련된 소설인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소설 자체가 보고 있는 방향이 생존과는 사뭇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전반적으로 등장인물들의 상황과 극복과정들을 중점적으로 써내려가는 책입니다.

특히, 이 책에서는 "상처"라는 것을 중심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어머니는 예전이었으면 그냥 죽었을 텐데, 기술이 쓸데없이 좋아져서 사람을 괴롭힌다고 했다. 살아야 할 사람이나 죽어야 할 사람이나. 나는 그게 쓸데없이도 아니었고 괴롭히는 것도 아니었다고 생각해. 여전히 그래.
하지만 어머니가 그렇게 느끼는 것도 사실이었고, 그리고. 어머니의 장례식이 끝나니 내심 홀가분했던 것도 사실이었어. 슬픈 만큼 마음이 가벼웠고, 그래서 미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지. 모든 게 끝났는데도 세상이 더 끔직해질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기도 했어.

 

대표적으로 등장인물인 경이삼촌이 가진 상처를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어머니의 죽음을 통해 일이 끝나게 되자 자신이 홀가분함을 느꼈음을 깨닫고 그 부분으로 인해 오히려 계속해서 스스로에게 상처받고 세상이 끔찍해보였다고 합니다. 위의 인용글처럼 시작 하나만 쳐내면 다른 아픔이 한순간에 사라질 것이라는 믿음은 그저 믿음일 뿐 사실이 아니라는 걸 냉정하게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부모님들한테 허락은 받았고?"
선율은 문득 수호와 자신 사이의 거리를 느꼈다. 그건 예전을 기억하는 사람과 그 이후만을 살아온 사람의 차이였다. 지금의 서울은 뭐가 있어야 한다,고 말하기에는 너무 많은 것을 잃어버렸다. 남편이 없는 아내, 아내가 없는 남편, 아이가 없는 부부. 부모가 없는 아이. 어느 하나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이윽고 사람들은 만약 이상한 게 있다면 바로 그런 말 자체일 거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사람을 사람 한 명으로 내버려두지 않는 낱말들 말이다. 부모님이 그랬고 남편이 그랬고 아들이 그랬다. 낱말들은 청소기와 자동차가 그랬던 것처럼 물에 잠겼으며 어느 물꾼도 서울 밑바닥에서 그것을 건져 오지 않았다.

 

세상이 물에 잠기고부터 서로의 존재를 당연시 여기는 말들이 당연하지 않아지는 날이 왔음을 보여줍니다. 이 내용은 물에 잠기지 않은 현대 사회에서도 점차 변화하고 있는 양상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항상 누군가가 있음이 당연했지만 점점 개인주의로 변하는 사회가 작가의 시선에서는 조금 씁쓸했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추가로 이 책에서는 "낱말"에 굉장히 큰 의미를 담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위 구절에서도 그렇고, 마지막 챕터의 제목 또한 "너를 깨울 낱말"입니다.

사실 낱말 단위들의 합으로 이루어진 수많은 소설들을 읽어왔지만 낱말이라는 단어 자체를 소설에서 접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작가는 항상 낱말을 단위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고, 저 또한 새삼스레 자주 사용하는 낱말이 무엇인지, 내가 보고있는 세상을 낱말단위로 살펴본다면 어떨지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인 것 같아서 재미있었습니다.


구성 ⭐️ ⭐️ ⭐️ 
내용 ⭐️ ⭐️ ⭐️ 
내취향 ⭐️ ⭐ ⭐ 

 

작품의 주제가 다소 신선하게 느껴졌습니다. 바다에 잠긴 세계라는 설정 자체도 흥미로웠지만, 그 설정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끌고 가기보다는 불필요한 요소들을 걷어내고 오직 등장인물들의 사건과 감정에 집중할 수 있게 만든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하지만, 한 두가지의 감정만을 집중적으로 다뤘으면 어땠을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뭔가 큰 주제로 상처, 극복을 이야기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 사이에 생기는 복잡한 감정들까지 큰 의미를 잡고 서술합니다. 이 과정에서 글이 오히려 너무 깊고 난해해져서 읽기 어려운 순간들이 조금씩 있었습니다. 한두 가지 감정에 집중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또, 수호가 기억을 찾는 과정에서의 나름의 이야기가 있었으면 하는 바램이 있었는데, 그런 부분은 아예없고 거의 바로 수호의 기억을 찾습니다. 바다에 잠긴 설정도 그렇고 기억을 찾는 과정 또한 굉장히 신선하고 재미있는 소재라고 생각이 드는데, 오히려 이런 부분이 너무 가볍게 지나가버려서 아쉬웠고, 이런 부분도 잘 활용했다면 더 좋은 글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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