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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적

[소설] - 아버지의 해방일지

by 수인분당선 2025. 8. 20.

 

지음: 정지아

출판: 창비


소설책을 읽고싶어 큰 생각없이 가볍게 베스트셀러들 중에서 눈에띄는 책을 골랐더니 이 책이었습니다. 전년도부터 계속해서 베스트셀러에 남아있었던 기억이 있어 한번쯤 읽어보자는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저는 도서관에서 책을 대여하여 읽었기에 사진과 같은 표지의 책을 읽었으나, 현재는 30만부를 기념하여 특별 리커버를 진행하였다고 합니다.


구성

260 정도페이지를 가지고 있고 적당한 크기의 책입니다. 기본적으로 챕터 자체는 없으나 많은 소설책들처럼 * 등으로 간단한 에피소드를 구분하고 있습니다. 창비답게 정말 정석적이고 바람직한 구성입니다.

주의해야할 점은 사실을 기반으로 한 책이고, 지역 사투리가 많이 나오는 편이어서 지역 이름이나 사투리같은 부분에서 읽는 데 어려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사전이나 검색을 통해 알아보는 것도 좋지만 저같은 경우에는 그냥 문맥상 그러려니 넘어갔습니다. 읽는 데 있어 끊기는 감은 있으나 걱정할 정도는 아닙니다.

 

줄거리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돌아가신 아버지, 

주인공인 딸은 3일간의 장례를 치르는 동안 만나는 아버지의 수많은 인연들과 그 사연들을 따라가보며 아버지가 살아온 인생을 생각해보고, 이해해봅니다.

매 순간 빨치산의 딸이라는 꼬리표에 허덕이며 빨치산의 딸이 아닌 자신의 정체성을 평생동안 증명해야했던 주인공은 3일간의 장롗와 그 사연을 통해 그제서야 밉고 미련해보였던 아버지의 행동들을 공감할 수는 없어도 이해할 수 있는 계기를 맞이하게 된다.

 

내용자체는 굉장히 길지만 줄거리는 짧게 요약이 가능합니다. 모든 이야기들이 아버지 하나로 모이기 때문입니다.

 

 

소설로써 가볍게 책을 읽고 있었는데 지명부터 사투리나 여러가지 면들이 정말 디테일하게 잘 구성되어있다고 생각했는데 마지막 작가의 말을 보니 진짜 작가의 이야기를 썼다는 사실을 알고 이해가 갔습니다.

사실을 기반으로 한 소설만큼 디테일한 설정면에서는 구성하기가 쉬웠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반면 사실을 기반으로 소설을 작성하는 건 개인적으로 오히려 새로운 주제로 이야기를 쓰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해서 작가분이 정말 대단하다고 느꼈습니다.

어머니의 옛 시동생 가족들이 아버지의 영정을 향해 절을 올리는 모습을 나는 어쩐지 처연한 마음으로 지켜보았다. 저들에게 내 아버지는 평생 함께할 줄 알았던 형수를 빼앗아간 사람만은 아닐 터였다. 형의 친구이고 동지였으며, 운명이 조금만 달랐다면 형과 친구의 처지가 뒤바뀔 수도 있었다. 어쩌면 이건 어디에나 있을 우리네 아픈 현대사의 비극적 한 장면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아버지가 대단한 것도, 그렇다고 이상한 것도 아니다. 그저 현대사의 비극이 어떤 지점을 비틀어, 뒤엉킨 사람들의 인연이 총출동한 흔하디흔한 자리일 뿐이다.

"아버지가 어떻게 생각하든 그게 현실인 걸 어쩌겠어요? 있는 현실을 아니라고 우길 셈이신가? 사회주의자께서?"
나는 주로 비아냥거렸고, 아버지는 분노에 찬 시선으로 나를 노려보며 입을 다물었다. 입을 다문 건 현실주의자인 아버지도 알기는 한다는 의미였다.
아버지는 자신의 신념을 후회하지 않았지만 사람인데 설마 괴물처럼 확장하는 자본주의의 기세 앞에 절망이든 회한이든 어떠한 서글픔 감정을 잠시나마 느끼기는 했을 터였다. 목숨을 건 자신들의 투쟁이 무의미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아버지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나는 물어보지도 않았다. 물어보지 않은 건 짐작조차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무엇에도 목숨을 걸어본 적이 없는 나는 아버지가 몇마디 말로 정의해준다 한들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옳았든 틀렸던 아버지는 목숨을 걸고 무언가를 지키려 했다. 나는 불편한 모든 현실에서 몇발짝 물러나 노상 투덜댔을 뿐이다. 그런 내가 아버지를 비아냥거릴 자격이나 있었던 것인가. 처음으로 아버지에게 미안했다.
들어오는 순간부터 나를 불편하게 한 아버지의 동지들에게도 이 불편해하는 마음이 미안했다. 이 순간에도 아버지의 동지들은 목청 높여 아버지와의 인연을, 조국통일에의 열정을 쏟아내고 있었다. 동지들의 장례식에 갈 때마다 참석한 동지들이 한둘씩 줄고, 십년쯤 지나면 누군가의 부고가 들린다 해도 갈 수 없는 몸이 될 사람들이었다.

 

두 구절은 아버지의 생애를 볼 수 있는 구절입니다. 아버지는 현대사의 비극으로부터 뒤엉킨 인연들 사이에서 도망치지 않고 맞서왔습니다. 2번째 인용글처럼 무언가에 목숨을 걸어본 저 작중의 아버지의 신념과 의지가 정말 인간 대 인간으로써 대단하다고 느꼈습니다. 저도 평생에 그런 순간이 오기나 할지, 온다면 정말 저 아버지처럼 나도 목숨다바쳐 내 신념을 지켜낼 수 있는지.. 사회적인 문제에 맞서는 것 뿐만이아니라 제 인생에 한번 쯤은 그런 순간을 맞이하고 싶고 지켜내보는 경험을 해보고 싶습니다.

"또 올라네."
여기 사람들은 자꾸만 또 온다고 한다. 한번만 와도 되는데. 한번으로는 끝내지지 않는 마음이겠지. 미움이든 우정이든 은혜든, 질기고 질긴 마음들이, 얽히고설켜 끊어지지 않는 그 마음들이, 나는 무겁고 무섭고, 그리고 부러웠다.

 

이 인용글에서 한번으로는 끝내지지 않는 마음이라는 말이 그 인연들을 정말 정확하게 표현해주는 것 같아서 읽으면서도 정말 인상깊었던 것 같습니다.

그 부모에게도 마땅히, 자식이 부모에게 기대하는 것이 있듯 자식에 대한 기대가 있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해보지도 못했을 만큼 빨치산의 딸이라는 굴레가 무거웠다고, 나는 변명이라도 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 변명을 들을 아버지는 이미 갔고 나에게는 변명의 기회조차 사라졌다. 그 사실이 뼈아파 나는 처음으로 소리 내 울었다. 아버지를 위한 울음이 아니라 나를 위한 울음이었다. 아버지 가는 길에까지 나는 고작 그 정도의 딸인 것이다. 

 

딸에게는 아버지가 빨치산 소속이라는 것이 너무나도 부끄럽고 미웠을 것입니다. 그로인해 자신 뿐만이 아니라 자신 주변의 관계들도 틀어졌었고, 그 꿋꿋한 아버지에 신념에 의해 아팠던 순간들도 분명 많았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아무런 선택지도 없이 태어나면서부터 빨치산의 딸일 수밖에 없었던 주인공은 아버지를 원망하는 마음이 아예 없을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아이고 좋겄소. 당신이 일등이라."
"왜 나가 일등인 중 안가?"
"당신이 만날 놀아중게 글지다."
"아니여. 나가 맹근 누룽지가 자네 것보담 시배는 크거든. 우리 아리가 누룽지라면 환장을 허잖애."
아닌디, 누룽지 안 줘도 아빠가 최곤디, 잠결에 중얼거렸고 아버지는 하하, 밤하늘이 시끌적하게 웃어젖혔다. 
사무치게, 라는 표현은 내게는 과하다. 감옥에 갇힌 아버지야말로 긴긴밤마다 그런 시간들이 사무치게 그리웠으리라. 그 당연한 사실을 나는,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야 겨우 깨닫는 못난 딸인 것이다. 아빠, 나는 들을 리 없는, 유물론자답게 마음 한줌 남기지 않고 사라져, 그저 빛의 장난에 불과한 영정을 향해 소리 내 불렀다. 당연히 대답도 어떤 파장 따위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도 하지. 영정 속 아버지가, 이틀 내 봤던, 아까도 봤던 영정 속 아버지가 전과 달리 그립던 어떤 날들처럼 친밀하게 느껴졌다. 죽음으로 비로소 아버지는 빨치산이 아니라 나의 아버지로, 친밀했던 어린 날의 아버지로 부활한 듯했다. 죽음은 그러니까, 끝은 아니구나, 나는 생각했다.

국가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아닌다. 아버지와 다름을 깨닫고 아버지를 닮고자 서서 오줌을 눌 만큼 아버지는 나의 전부였다. 그 아버지를 이데올로기가, 국가가 빼앗아간 것이다.
어느 쪽인지는 확실치 않았다. 다만 분명한 것은 차가운 철제 침대에 누워 수의에 싸이고 있는 저 시신과 내가 적어도 한때는 한 몸이나 같았다는 점이었다. 아버지는 나의 우주였다. 그런 존재를, 저 육신을, 이제 다시는 볼 수 없다. 지금 이 순간에도 생생하게 시간과 공간의 한 지점을 점령하고 있는 저 육신이 내일이면 몇줌의 먼지로 화할 것이다.
마음 저 밑바닥에서 물기가 차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버지가 빨치산이었기에 슬펐던 순간들만큼 아버지와 함께했기에 기뻤던, 아버지가 빨치산이 아닌 그저 주인공의 아버지로써 함께했던 순간들을 회상하며 원망보다는 아버지가 떠났다는 사실에 대한 슬픔과 그리움이 어느 순간 벅차올랐음이 이 구절에서 나타납니다. 

 

학창 시절에 아버지와 관련한 시를 친구들앞에서 낭송하다가 펑펑 울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저의 아버지는 평소에 다소 무심하고 무뚝뚝했기에 제게 아버지란 존재는 다소 애틋한 감정보다는 조금의 미움도 함께했었습니다.

하지만 차츰 기억을 더듬어보면 아버지와 함께 산책을하며 식물의 이름을 공부했던 날들, 물수제비를 뜨던 날들처럼 별것아닌 그 기억들이 떠오르고, 아버지도 아버지의 방식대로 저를 아껴줬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가진 아버지에 대한 미움이라는 감정은 미움이 아닌 오히려 아버지를 그만큼 애틋하게 원했기에 가질 수 있는 서운함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처럼 주인공이 초반부터 틱틱거리며 아버지를 원망하고 미워하는 마음은 오히려 그만큼 아버지를 사랑하고 그리워하기에 나왔다는 걸 깨닫게 되자 이 구절이 특히나 더 극적이게 다가왔던 것 같습니다

 

 


일전에 읽었던 "엄마를 부탁해"와 같이 이번엔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때문에 이런 치트키같은 주제로 인해 저는 안 울 수가 없었습니다.. 읽는 데 있어서는 큰 감흥이 들지 않았는데, 막상 책을 덮고 찍어둔 구절들을 써내려가고, 되새기고 나니 제가 생각보다 굉장히 많은 글을 스크랩했다는 걸 알 수 있었고,,  이 책의 깊이를 더 잘 느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구성 ⭐️ ⭐️ ⭐️ ⭐️ ⭐️
내용 ⭐️ ⭐️ ⭐️ ⭐️ ⭐️
내취향 ⭐️ ⭐ ⭐ ⭐ ⭐ 

 

오죽하면 할매가 뻥을 치겠는가. 다 먹고살자고 하는 짓이다. 급하면 뻥도 치고 호통도 치는 것이 사람 아닌가. 
사람이 오죽하면 글겄냐. 아버지 십팔번이었다. 그 말 받아들이고 보니 세상이 이리 아름답다. 진작 아버지 말 들을 걸 그랬다.
아버지. 아버지 딸, 참 오래도 잘못 살았습니다. 그래도 뭐, 환갑 전에 알기는 했으니 쭉 모르는 것보다는 낫겠지요? 딸을 대장부의 몸으로 낳아주신 것도, 하의 상의 인물로 낳아주신 것도 다 이해할 터이니 그간의 오만을, 무례를, 어리석음을 너그러이 용서하시길... 감사합니다.
아버지. 애기도 하는 이 쉬운 말을 환갑 목전에 두고 아버지 가고 난 이제야 합니다. 어쩌겠어요? 그게 아버지의 딸인걸. 이 못난 딸이 이 책을 아버지께 바칩니다.
- 정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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